밴쿠버 생활에 대한 소고
캐나다, 그중에서도 밴쿠버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로 결정한 것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비교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바쁘고 복잡한 삶과 혐오를 너무 쉽게하고 나도 당하지만은 않으라 마음먹고 나도 같이 혐오하는 기분이 드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이 캐나다 행의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와이프나 나나 여행을 너무나 좋아했고 여행하면서 살아보고 싶은 나라나 도시들이 있으면 거기서의 생활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계속해서 있었다.
여행과 생활은 많이 다를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타국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몇개의 나라와 도시들을 후보에 두고 저울질을 했고, 밴쿠버에서 살고 있는 누나의 추천으로 밴쿠버를 선택하게 됐다. 밴쿠버에서의 시작과 토론토로 이주하는 날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밴쿠버는 12년 전 와이프와 세계일주를 할 때 처음으로 여행으로 와 봤는데 그때의 인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날씨가 좋은 여름이 아니어서 밴쿠버에서는 비가 온 날이 많았고, 밴프와 옐로우나이프는 눈으로 덮여있었다. 누나네의 방문과 옐로우나이프에서의 오로라가 주된 목적이었다.
최소 3년은 살아보자고 해서 왔는데, 여행과 생활은 다르다는 생각을 너무 가볍게 했던 것 같다.
밴쿠버 생활 이년째 되던 해에는 향수병 + 이방인으로의 겉도는 느낌들이 점점 커져서 너무나 힘들었다. 게다가 코로나도 터지고.
대화 할 사람이 없기도 없었거니와 와이프와 많은 대화를 했고 원래 계획한대로 영주권까지는 받아보고 또 다른 계획을 해보자고 서로를 다독였고, 계획대로 3년 조금 넘는 기간 후에 영주권을 취득했다.
영주권이 목적이 아니었기도 했고 항상 다른 곳으로의 이동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어서 영주권이 있기 전,후가 우리의 마음가짐이나 생활 패턴에 많은 변화를 주진 않았다.
대부분이 이민자인,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민자인 곳이라는 것을 점점 실감하며 살면서 점점 밴쿠버의 생활에 안정감을 느끼게 됐다.
무엇을 사기 위해선 어디를 가고, 어느 계절엔 어디가 좋고 하는 것들에 대해 점점 익숙해지고, 많지는 않지만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인사하는 그런 보통의 일상생활에 만족감을 느끼게 됐다.
밴쿠버는 도시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됐지만 그렇기에 검증되고 안전한 도시 시스템과 인프라 등이 갖춰져 있는 도시임을 점점 느끼게 되었다.
인구밀도가 적은데서 오는 많은 장점들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많이 있겠지만, 그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인식 수준이 높은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밴쿠버를 찾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안정감을 느끼게 되면 우리는 또 새로운 곳을 갈망하고 변화에 목마르게 된다.
낯선 곳에 가면 그 낯섦과 이질적인 느낌이 좋기도 하지만 온전히 그곳의 생활과 느낌을 알고 싶어서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러다 보면 다시 또 낯선 곳을 찾아가고 싶고..역마살 굴레에 빠졌다.
그래서 아쉽지만 6년간의 밴쿠버 생활을 정리하고 토론토로의 이주를 결정하게 됐다.
대학생때 호주에 일년 정도 있었긴 했지만 그때는 도시도 몇개 돌아다니기도 했고, 여행의 느낌이 더 컸기 때문에 밴쿠버가 오랜 기간 생활을 해본 첫번째 외국의 도시였다.
아직 다른 도시들도 많이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크긴 하지만 이젠 큰 결정을 할 때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진 못할 듯 하다.
다만 지금 마음으로는 밴쿠버는 나중에 다시 한번 더 살기위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태영이는 아직까지도 가끔 그런 말을 한다.
"내 마음은 아직 밴쿠버에 있어".